나는 월말에 도쿄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피서지를 떠나신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질 때 "앞으로 가끔씩 선생님 댁을 방문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간단하게 그냥 "네, 어서 오세요"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과 상당히 친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으로부터 좀 더 진한 말을 기대하며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족한 대답이 내 자신감을 조금 깎아먹었다.
나는 이런 일로 선생님에게 자주 실망감을 느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또다시 사소한 실망을 반복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선생님과 멀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불안감에 흔들릴 때마다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기대하는 어떤 것이 언젠가 눈앞에 만족스럽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젊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 젊은 피가 이렇게 솔직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나는 왜 유독 선생님에게만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 몰랐다. 그것이 선생님이 돌아가신 오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내게 보여주셨던 무뚝뚝한 인사나 무뚝뚝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처받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서려는 인간에게 다가갈 만한 가치가 없으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사람의 그리움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사람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당연히 선생님을 찾아뵐 생각으로 도쿄에 돌아왔다. 귀국 후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아직 2주가 남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한번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지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KAMAKURA에 있을 때의 기분은 점점 옅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덧칠된 대도시의 공기가 기억의 부활에 따른 강한 자극과 함께 내 마음을 짙게 물들였다. 나는 오가며 학생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새로운 학년에 대한 희망과 긴장을 느꼈다. 나는 한동안 선생님을 잊고 지냈다.
수업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자 내 마음에는 또다시 일종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욕심에 가득 차서 내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다시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선생님이 보고 싶어졌다.
처음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은 부재중이었다. 두 번째로 간 것은 다음 일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맑은 하늘이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그 날도 선생님은 부재중이었다. 가마쿠라에 있을 때, 나는 선생님의 입을 통해 선생님이 언제든 대부분 집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오히려 외출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두 번 와서 두 번 다 만나지 못한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어딘가 모르게 이유 없는 불만을 느꼈다. 나는 바로 현관문을 떠나지 않았다. 하녀의 얼굴을 보고 조금 망설이며 서 있었다. 지난번 명함을 건네주었던 기억이 있는 하녀는 나를 기다렸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신 나왔다.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정녕에게 선생님의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선생님은 매달 그날이 되면 ZOUSHIGAYA의 묘지에 있는 어떤 부처님에게 꽃을 바치는 것이 습관이라고 했다. "이제 막 나왔는데, 충분할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부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번화가 쪽으로 한 정거장 정도 걷다 보니 나도 산책 삼아 조시가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다. 그래서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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