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사람들이 하는 질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확인을 위한 질문입니다. “이게 맞나요?”, “다음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고, 자신은 그 답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는 전제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는 확인이 아닌 질문입니다. 눈앞에서 무언가가 일어나자, 무심코 입에서 튀어나와 버리는 것입니다.
“왜?”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의 시선은 내가 아니라 냄비나 그릇 안을 보고 있습니다.
결정해도 되는 여백을 스스로 채우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다음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나선 사람의 시선은 선생님이 아니라, 손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향하게 됩니다.
가장 선명하게 보인 것은 버터였습니다.
젖소를 키우는 낙농가와 함께 버터를 만드는 체험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재료는 우유가 아니라 생크림입니다. 페트병에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쉴 새 없이 흔들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냥 놀이 삼아 흔들어 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팔이 피로해지면 옆 아이와 자리를 바꾸고, 방 안은 사각사각 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손안의 감촉이 달라집니다. ‘찰랑찰랑’ 하는 액체의 소리가 어느 순간 갑자기 뭉개지는 것입니다. 흔들고 있는 본인 스스로가 가장 먼저 이를 알아차립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하얀 액체였던 것이 노란빛을 띤 덩어리와 물 같은 것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표정. 액체였던 것이 흔들기만 했을 뿐인데 덩어리로 변했습니다. 아무도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눈앞에서 물체의 모습이 변한 것입니다.
“왜?”라는 말은 바로 이때 나옵니다. 제가 “왜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묻기도 전에, 상대방이 먼저 그 말을 꺼냅니다.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놀라움이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움이 먼저 오고, 설명은 그 놀라움을 받아들이는 그릇으로서 그 뒤에 따라옵니다. 지방 알갱이들이 부딪혀 모인다는 이야기를 해도, 놀란 아이들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줍니다.
게다가 이날은 젖소를 키우는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손 안에서 탄생한 버터의 이면이 그날, 아이들 앞에서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부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붉은 깻잎을 달여낸 짙은 보라색 액체에 레몬즙을 짜 넣으면, 순식간에 선명한 빨간색으로 변합니다.
기름과 식초는 섞어도 분리되는데, 달걀 노른자를 넣으면 부드러운 마요네즈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목격한 사람은 교과서를 펼치기 전에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드레싱을 직접 만드는 수업에서, 평소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아이가 그 샐러드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동행하신 분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본인은 직접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맛이 시중에서 파는 제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채소와 저와의 관계였습니다. 그저 내놓은 대로 먹기만 하던 채소가, 제 손으로 직접 손질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것이라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장면이든 놀라움이 먼저였고, 설명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언제나 눈앞의 무언가가 변하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생물에 생기가 깃들고, 딱딱한 것이 부드러워지며, 가루와 물이 빵이 됩니다. 부엌은 사물이 모습을 바꾸는 모습을 매일 눈앞에서 보여주는 곳입니다. 게다가 그 변화는 화면 속이 아니라, 내 손 안에서 일어납니다.
“왜?”라는 질문은 가르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를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들 중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놀라움이 일어나는 순간까지 그 사람을 이끌어 가는 것뿐입니다. 그 이후는 그 사람 안에서 저절로 시작됩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점이 남아 있습니다. 교실에서 나온 ‘왜?’라는 질문은 수업이 끝난 후 어떻게 될까요?
한참 지나서 “집에서도 만들어 봤어요”라는 소식이 전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바로 이런 소식입니다. 교실 안의 열기는 그 자리에서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었는지 여부는 제가 알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날의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죠.
다만, 보고가 전달되는 교실과 전달되지 않는 교실이 있습니다. 똑같이 신나게 놀고 돌아왔는데, 한쪽은 집의 부엌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차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어느 수프 요리 교실이었습니다.
칼을 쓰지 않습니다. 불도 쓰지 않습니다. 손으로 뜯을 수 있는 식재료를 뜯어서 물과 콘소메와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립니다. 그게 전부인 수프입니다.
요리 교실 치고는 꽤 소박합니다.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만들어 봤어요’라는 보고가 확실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냉장고 안을 이렇게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른이었습니다. 매일 냉장고를 여는 사람이, 그런 것을 관찰한 적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매일 여는 냉장고는 늘 같은 메뉴라는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저걸 만들 테니까, 저걸 꺼내야지.’ 이는 검색일 뿐, 관찰이 아닙니다. 그런데 ‘손으로 뜯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새로운 시각을 하나 얻었을 뿐인데, 같은 냉장고가 마치 처음 보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수프는 처음부터 가정 주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손으로 뜯을 수 있는 재료만 있다면, 아이 혼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자레인지는 어느 집이나 있습니다. 재료를 지정하지 않은 것은, 그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해 드린 것은 레시피라기보다는 찾는 방법입니다. 레시피는 집이 바뀌면 재료를 구하기 어렵지만, 찾는 방법만 알고 있다면 어느 집 부엌에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인 강좌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술지게미 활용법을 알려주는 세미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올바른 레시피를 받으러 오십니다. “이 재료는 무엇에 사용하는 게 맞나요?”라고 묻죠. 하지만 제가 전해드리고 싶었던 것은 특정 요리의 레시피가 아니라, 재료의 특성 그 자체였습니다.
성질을 알게 되면, 술지게미는 전용 재료가 아니라 평소 요리에 넣을 수 있는 재료로 변합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집에 있는 재료로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하며 돌아가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정답 하나를 가지고 가려고 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시도해 볼 방법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에서 만들었다”는 보고는 재현에 대한 보고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부엌에서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집에서 만들게 되었다는, 바로 그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번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가 그 사람의 일상 속에서 계속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시 시작한 사람은 그 후 어디까지 가게 될까요?
그 앞날을 오랫동안 보여 준 곳이 있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매달 열리는 채소 공부 모임에서 저는 몇 년 동안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같은 사람과 몇 달, 때로는 몇 년 동안이나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날 보였던 그 단정한 모습이 서서히 풀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준비하고, 꼼꼼히 메모를 하며, 질문은 조심스럽게 한두 개 정도만 하는 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시작됩니다.
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Y양입니다.
수업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가장 조용한 수강생 중 한 명이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질문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질문 속에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자신의 이야기가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Y 양이 바라보던 채소는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가 손질이나 영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로 곁에서, 그녀는 채소 그 자체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카구라 난반을 손에 들고는 “귀엽다”라고 말했습니다.
카구라 난반은 카구라 가면과 닮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는 채소입니다.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주름이 잡혀 있어, 약간 무서운 얼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채소를 ‘귀엽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 Y양은 지금 채소를 주제로 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주인공들은 그 당시 이미 그녀의 눈 속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분은 K 씨입니다.
‘근처라서’라고 할 수 없는 거리에서 매번 시간을 내어 찾아오곤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항상 묵묵히 손을 움직이던 분이었습니다.
그 K 씨는 나중에 자택에서 요리 교실을 열게 되었습니다. 본인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 한참 뒤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강좌는 제 곳에서 끝나지 않고, K 씨 집 부엌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대상으로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세 번째는 S 씨입니다.
제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그 채소를 활용한 요리법을 더 배우고 싶어서 수강했습니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질문은 구체적입니다. 한 가지를 알게 되면, 다음에 알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됩니다.
그 후, 이 분은 노년에 채소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자신 있게 채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격증을 땄습니다.”
채소에 대한 지식이라면, 오랫동안 밭을 가꿔온 이 분에게는 처음부터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부족했던 것은 지식이 아니라, ‘나도 채소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이었습니다. 배움을 위해 이곳에 와서 얻은 것은, 이야기해도 된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모를 멈추고, 질문이 늘어나고, 질문 속에 하고 싶은 일이 섞여 들어가더니,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서는 세 사람 모두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한 번 만에 변한 것은 아닙니다. 매달 꾸준히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저함이 사라지기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자리가 여러 번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변화에는 꾸준한 자리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꾸준한 자리만 있다면 어른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세 사람 모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교실을 열고, 자격증을 취득해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도 ‘주는 입장이 되어 주세요’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어느새 스스로 새로운 문을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미리 밝혀두자면, 세 사람이 변한 것이 제 강좌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순서는 아마 그 반대일 것입니다.
세 사람은 원래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터디 모임은 그 준비를 위해 다니는 장소와 매달 모일 기회, 그리고 질문해도 되는 상대를 마련해 준 것뿐입니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교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이 교실에서 지켜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어른의 경우, 그런 마음 위에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주저함이 더해져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반복해 나가는 것. 그 소소한 반복이 어깨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페트병을 흔들며 “왜?”라고 물었습니다. 어른은 몇 년 동안 다니던 끝에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이는 물론, 계기도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둘 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행동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 있던 것이 요리를 계기로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드는 법을 전하고, 요령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열해 보니, 제가 하고 있던 일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을 보았을 때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까요?
TERUMI ISHIBASHI
FARM8 co.ltd.,
다음 장 ‘요리가 키워내는 미래의 힘’ 제4장 바라보는 시각